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갑자기 어릴 적 기억이 툭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에반게리온이 딱 그랬습니다.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때 비트매니아 같은 리듬 게임에서 흘러나오던 오프닝 곡이었는데, 일본어를 몰랐으니까 그냥 "잔코쿠나 인데" 사운드 뭐시기 라고 영어처럼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일본어가 어느 정도 들릴 쯤에야 그게 '잔혹한 천사의 테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곡이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을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캐릭터 심리: 각자의 방식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에반게리온이 방영된 건 1995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작품인데, 캐릭터들의 내면 묘사가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다는 게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정주행을 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멈칫했던 건 신지, 아스카, 미사토 세 인물의 심리 묘사였습니다. 처음에는 세 사람 모두 표면적인 이미지만 보였습니다. 신지는 도망치는 인물, 아스카는 자존심 강한 인물, 미사토는 덜렁대지만 든든한 어른. 그런데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각 인물의 트라우마(trauma)가 쌓이면서 그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트라우마란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이 현재의 감정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상흔을 의미합니다.
신지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었고, 아스카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자존심이라는 껍데기로 덮어두고 있었습니다. 미사토는 지휘관으로서, 보호자로서는 충분히 기능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감정 정리는 가장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진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사 다닐 때 제 모습이 딱 여기서 겹쳐 보였습니다. 하기 싫은 일도 괜찮은 척 버티고, 인정받고 싶어서 괜히 더 애쓰고, 겉으로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정리가 하나도 안 돼 있던 순간들. 한 캐릭터가 아니라 셋 모두에서 조금씩 제 모습이 보였다는 게 더 씁쓸하게 와닿았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부릅니다. 방어기제란 불안이나 고통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 전략을 뜻합니다. 에반게리온의 캐릭터들은 이 방어기제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결과가 어떤 모습인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릴 때 봤을 때는 반쯤 이해했을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 그때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 표면만 건드렸던 것 같습니다.
연출 분석: 움직임을 멈춘 순간, 감정이 가장 크게 흔들렸다
에반게리온의 연출 중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방식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정지 화면(still cut)을 의도적으로 길게 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재생이 멈춘 건가 싶을 정도로 화면이 그냥 고정된 채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엘리베이터 씬이나 마지막 사도 장면이 특히 그랬습니다. 여기서 still cut이란 캐릭터나 배경의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고 하나의 장면을 고정시켜 시간을 지속시키는 연출 기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오히려 불안해지고, 눈치 보게 되고,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BGM과 효과음, 등장인물의 표정에 집중이 되면서 감정은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는 구조입니다. 움직임이 없어서 더 몰입되는 역설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연출입니다. 타이포그래피란 문자의 크기, 서체, 배치 등을 시각적으로 구성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인 기법을 말합니다. 에반게리온은 특정 감정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대신, 한자 한 글자나 짧은 문장을 화면 가득 번쩍 띄워버립니다.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직접 꽂아 넣는 방식인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자를 바로 읽을 수 있었다면 이 연출을 배로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연출 방식이 인상 깊었던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지 화면 연출: 움직임의 부재가 역설적으로 감정의 집중을 유도하고, 관객 스스로 긴장감을 채우게 만드는 구조
- 타이포그래피 연출: 설명 없이 감정을 직접 전달하여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열어두는 방식
- 두 연출의 공통점: 정보를 줄이고 여백을 늘릴수록 오히려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점
이런 연출이 1990년대에 이미 시도되었다는 점이 제게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서 프레임 수를 줄이는 것이 예산 절감의 수단이기도 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지만(출처: 일본 국립미디어예술데이터베이스), 그 제약을 오히려 강점으로 전환해 낸 방식은 지금 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세계관: 30년 전 발상인데, 지금 봐도 물리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에반게리온의 세계관 설정은 어릴 때 봤을 때는 그냥 "멋있다, 신기하다"로 끝났습니다. 건물이 땅 밑으로 내려가고, 지하에 매달려 있고, 필요한 물자는 땅 밑에서 올라오고. 그냥 미래 기지가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조금 달리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긴 한데, 물리적으로 따지면 사실 성립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큰 지하 공간이 비어 있는 채로 지상 건물들이 매달려 있으려면 구조적으로 버틸 수 없습니다. 일부만 파고 나머지는 지반으로 지탱하는 방식이라면 모를까. 에반게리온의 배터리 시스템도, 충전기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것도 그럴싸하긴 한데, 현실적으로 그 규모의 인프라를 지하에서 운용하려면 지반 자체가 감당이 안 됩니다.
물론 그런 걸 따지면서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제 경험상 이런 설정의 허점을 생각하면서 보는 게 오히려 작품에 더 깊이 빠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게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건 세계관이 그만큼 구체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SF 장르에서 이런 설정의 구체성은 세계관 몰입도(world immersion)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꼽힙니다. 세계관 몰입도란 관객이 허구의 세계를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며 이야기에 빠져드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에반게리온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세계관 설정이 단순한 배경 장치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메(anime) 산업 전반에서도 에반게리온의 세계관 설계 방식은 이후 작품들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출처: 일본 애니메이션학회).
볼 때마다 새로운 걸 느끼게 하는 작품이 있는데, 에반게리온이 딱 그렇습니다. 이미 아는 스토리는 넘겨가면서 보는 편이라, 다시 보려면 내용이 충분히 잊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에반게리온은 한 번 보고 "이해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저도 이번 정주행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고, 아직 보지 못한 신극장판 시리즈도 남아 있습니다. 캐릭터 심리, 연출, 세계관 어느 한쪽만 파고들어도 충분히 오래 생각할 거리가 나오는 작품이니, 아직 정주행을 시작하지 않은 분이라면 넷플릭스에 1화부터 순서대로 쭉 보시기를 권합니다. 처음엔 낯설더라도 10화쯤 넘어가면 분명히 멈추기 어려워질 겁니다.